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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금정산365일] 부산의 진산 금정산, 금정산 소개

by Jigton GAL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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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정산 개괄 ] 

금정산 금샘

 

백두산에서 시작한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동해를 따라 설악산과 오대산을 거쳐 남으로 내려오다 태백산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한반도의 복부(腹部)로 들어가 버린다. 그 대신 동해를 따라 계속 뻗은 산줄기 하나를 남겨두었으니 그것이 낙동정맥(洛東正脈)이다.
태백산 삼수령에서 시작한 낙동정맥은 한참 내려오다 부산 가까이 단석산과 가지산을 지나고 신불산과 천성산을 거쳐 지경고개를 넘어 금정산에 이른다. 
북쪽으로 양산시 동면에 접해 있고, 동쪽은 부산광역시의 금정구와 동래구, 남쪽 연제구와 부산진구, 그리고 서쪽은 사상구와 북구에 접하여 낙동강에 이르는 이 산의 총면적은 약 1,300만 평이다.
많은 봉우리 가운데 해발 801.5m의 고당봉이 주봉이다. 산록이 가파르고 사면에는 거대한 바위들이 깔려있다. 산정을 잇는 산릉은 치밀한 절리(節理) 때문에 부서진 기반암의 노출암으로 경관이 마치 성곽처럼 보인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산간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자연조건을 이용하여 산성을 쌓았다. 우리나라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금정산성(사적 제215호)이다.
부산의 산들은 대부분 금정산에서 갈라져 나간 지맥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금정산은 풍수지리설로 보면 부산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에 해당한다.

 

 

 

산 이름의 유래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오르다 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고당샘이 있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200m쯤 가면 높이 4m 정도의 바위기둥 꼭대기에 넓은 그릇모양으로 패어 물이 고여 있다. 금정산이라는 이름이 유래된 금정(金井 : 금샘)이다. 
물이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어서 비가 내려 고여야 물 구경을 할 수 있고 바닥의 길쭉한 홈이 물고기를 연상케 한다.
이곳은 옛날부터 알려져 온 듯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23권 동래현(東萊縣) 산천(山川)조에 금정산은‘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산마루에 3장(丈)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자(尺)며, 깊이는 7치 (寸)쯤 된다. 항상 물이 가득 차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속에서 놀았다하여 이렇게 그 산을 이름 지었고,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梵魚寺) 라 불렀다(在縣北二十里山頂有石高可三丈上有井圍十餘尺深七寸許有水常滿旱不 渴色如黃金世傳有一金色魚乘五色雲從天而下游泳其中以此名其山因創寺名梵魚)’ 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한낮이나 보통 때 이곳을 지나다 보면 금빛이란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그런 보통의 바위 패인 곳에 물이 고여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후 늦은 시간 어쩌다 석양이 짙을 무렵이면 산의 서쪽으로 멀리 흐르는 낙동강과 고당봉 일대의 바위들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금정(金井)도 옛 전설 그대로 금빛을 발한다.
금정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다. 그런데도“범어사가 창건된 지 1,3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금샘의 위치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는 스님들이 대대로 비밀로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부채바위 앞 동자바위와 고당봉 동북쪽 바위.

 

지형과 지질

주봉인 고당봉을 중심으로 장군봉과 계명봉을 잇는 동북쪽과 의상봉 ‧ 대륙봉으로 달리는 주릉, 그리고 망미봉에서 상계봉으로 뻗은 남쪽 능선 등의 바깥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심하고, 주봉 남쪽으로 펼쳐진 중앙부는 전형적 침식분지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삭마(削磨)작용을 거듭하여 곳곳에  기반암이 드러난 침봉이 마치 성채(城砦)처럼 우뚝 서있다. 
여기다 산정과 봉우리를 잇는 예리한 톱니바퀴형의 기반암은 때로 성곽처럼 보인다.
산록에는 이들 산정과 산릉에서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들이 깔려있다. 곳에 따라서는 이들 바위가 소하천의 상류를 메워 암괴류(巖塊流)를 형성한다. 다시금 하천의 흐르는 물에 운반, 퇴적되어 소선상지를 만든다.
금정산맥의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장군봉과 원효봉, 상계봉 등 고도 500〜800m의 산정과 산정 사이를 잇는 능선 의 대부분이 산성으로 이어진다. 이들 산정 및 산릉은 불국사 화강암류 및 마산암류의 크고 작은 기반암의 노출로 특이한 암괴지형을 이룬다.
원래 커다란 한 개의 화강암 바위가 풍화작용에 의해 수직과 수평으로 깨어진 틈 즉 절리(節理)가 발생하고 이것이 커져서 그 하나하나가 독립된 바위(核石)로 서있게 된다. 이러한 바위지형을 토르(Tor)라고 한다.

 

 

 

 

토르는 그 지역의 기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특히 열대습윤 기후의 평탄한 지역에서 잘 형성된다. 금정산 동문에서 북문으로 주릉을 따라 산행을 하다보면 능선 위에 탑처럼 쌓여 있는 바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암괴지형 가운데서‘바로 서 있는 석탑’처럼 보이는 것을 토르라 하고 그 형태가‘해변에 떠있는 섬’과 같은 모습을 보일 때는 도상구릉(Inselbarg)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암괴지형은 형태상의 구별이 쉽지 않다. 다만 규모면에서 높이 15〜20m를 경계로 이보다 높은 것을 도상구릉이라고 하고 그 이하는 토르로 부르고 있다. 금정산의 산정과 산릉에 발달한 암괴지형은 편의상 토르로 부르고 그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좌측 부채바위와 우측 무명암


토르는 모두 50개로 이들의 높이는 4〜15m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그 중 28개가 높이 5m이하의 소형이고, 15m의 대형 토르는 고당봉과 상계봉 뿐이다. 토르의 높이와 둘레와의 관계는 높이가 낮을수록 둘레 또한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금정산의 토르는 규모가 작은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또한 토르는 해발 200〜800m사이에 있고 200m 이하의 고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금정산의 토르는 주봉인 고당봉을 비롯하여 원효봉과 상계봉을 잇는 해발 450〜800m 사이의 산정과 산릉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이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총 50개 중에서 고도 400〜500m에 38개가 있으며, 700m 이상은 6개, 200〜300m는 2개에 불과하다.

 

 

토르는 형태에 따라 성곽 형과 탑형, 붕괴형, 탁상형, 암주형, 도상구릉형 등 6개 유형으로 구분한다. 

금정산 의 50개 토르 중에서 성곽형이 21개이고 탑형 16개, 암주와 탁상형이 3개, 도상구릉형은 고당봉 1개뿐이다. 이들 형태별 위치는 50개 중 30개가 집중된 고당봉에서 상계봉에 이르는 주능선에는 성곽형이 16개로 가장 많다. 

또한 도상구릉형과 탁상형은 모두가 주능선 상에 발달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붕괴형과 암주형은 주능선과 그 사면에 고르게 분포하며, 탑형은 주능선에 주로 발달하나 그 사면에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토르의 유형별 고도분포는 탑형과 성곽형이 고도 500〜800m 사이에 가장 많고 다음으로 600〜800m에 발달하고 있다.

 

 


산록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산정과 산릉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토르의 아래로 거력(巨礫)들이 퇴적되어 독특한 암석야(巖石野)와 암괴류. 애추(崖錐 talus)를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암괴류는 금정산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의 특징은 운반 거리가 멀수록 퇴적물의 크기가 작아지는 하천과는 달리 위 아래 구분 없이 크기가 다양한 거력들이 쌓여 있다. 동쪽 산록인 범어사 계곡과 서쪽 산록인 대천천의 지류 계곡이 전형적인 형태라 하겠다.
암석야는 산성의 동문을 기점으로 하는 동쪽 사면에 널리 분포하며, 애추는 상계봉의 남서산록에 발달하고 있다. 특히 암괴류는 하천 물로 운반된 것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지고 사면(斜面)을 따라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현재의 기후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고 과거 온난습윤기 지하수에 의한 심층풍화의 빙하기 풍화작용을 거쳐 침식 운반되면서 생성된 지형으로 유추할 수 있다.


❖ 부산대 오건환, 강희철박사(지질교육학과)의 글과 강연 기사를 정리한 것이다.

 

 

 

고당봉

금정산의 주봉인 해발 801.5m 의 고당봉은 오랜 세월 비바람으로 씻기고 깎여서 지금은 마치 성곽처럼 우뚝 서있다. 

나무가 자라 지 않는 이 암봉에 올라서면 서쪽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동·남쪽으로 부산시가지와 그 너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 고당봉 표석비.

고당봉은 그동안 한글표기로는 고암과 고담봉, 고단봉, 고당봉 4가지로 불리고, 한문으로는 姑岩(고암)과 姑潭峰(고담봉), 姑壇峰(고단봉), 그리고 고당봉의 여러 가지 표기인 姑堂峰 姑黨峰 高幢峰 등 6가지로 씌어왔다.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에 나오는 지도에는 姑岩(고암)으로 표기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게 표현하고 있어 어느 것이 옳은 명칭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당봉의 정확한 명칭을 가리기 위해 금정구청은 1994년 금정산 표석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학자와 향토사학자들에 의뢰하여 그 이름 찾기에 고증 작업을 했다.
거기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와 토론과 검정을 거쳐 고당봉이라는 데 의견이접근되었으나 한자 표기에서는 姑堂峰과 高幢峰 두 가지로 나뉘었다.
장시간 토론 끝에‘우리나라는 모든 산에 산신이 있고, 고려 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여신이었다. 금정산의 고당봉도 할미신이므로 할미姑(고) 집堂(당)의 고당봉이 옳다’는 정중환박사(전 동아대교수)의 주장에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향토사학자 주영택(朱永澤)씨는 금정산 8경에 高幢歸雲(고당귀운)이 있는 사실 등을 근거로 금정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가 의상대사의 뜻에 따라 高幢峰(고당봉)이라고 명명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 고당봉이란 이름이 있기에 그 아래 범어사를 창건하게 되었음을‘고당주령(高幢主嶺)은 일산(一山)의 령을 진하여 제 불의 도장을 스스로 지었으며--’라는 기록을 근거로 들기도 하였다.

새로 건립한 고당봉 표석비.

 

또한 <범어사 창건사적>에 의상대사가 대왕과 함께 금샘이 있는 곳을 찾아가 7 일 7야 독경을 한 곳이 바로 금정산 고당봉이며 법의 장을 높이 세워 운집한 사대부중을 위해 일승법문을 강설한다는 뜻을 보더라도 高幢峰(고당봉)이라는 명칭이 옳다는 것이었다.
한편 <궤범어사서기궤유전>(1902년)에 의하면‘지금부터 400여 년 전에 밀양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하면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여생을 보내면서 불사로 사부대중들의 칭송이 대단했다. 어느 날 이 보살은 큰스님께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姑母靈神)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제(姑堂祭)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으로 범어사를 지켜주겠다”고 유언하고 돌아가셨다. 큰스님은 이 유언에 따라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1 년에 두 번의 제사를 지내니 범어사가 아주 번창하는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고당봉에 있는 할미당집에 얽힌 기록이다.


이러한 영험이 널리 알려지자 고당봉의 할미당집(姑堂)에는 밤낮 기도하는 전국 의 무당과 보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금정산의 영험한 정기를 받으려는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고당이 고당봉으로 자연스럽게 바뀐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고당봉 남면 전경

맺음말 ( 코스안내에 앞서 )

백두대간 삼수령에서 시작된 낙동정맥은 동해를 따라 내려오다 그 끄트머리인 몰운대를 앞두고 부산에 들어서면서 우뚝 솟은 금정산을 만난다. 도시 한가운데 있는 산이 대부분 그렇듯 금정산 등산로도 여러 갈래다.
도시철도 2호선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등산로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산의 서쪽보다는 범어사와 금강공원이 있는 동쪽에 훨씬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쪽이 더 많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 거미줄처럼 이리저리 이어진다. 더구나 교통이 불편해 하산코스로나 이용되던 서남쪽의 만덕동 주변도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되면서 들머리로 주목받게 되었다.
금정산의 크기를 느껴보려면 먼저 주능선을 종주해야 한다. 양산 쪽에서 올라 낙동강과 함께 흐르듯이 능선을 따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금정봉이나 백양산까지 걷다보면 내륙의 산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금정산만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이 산을 속속들이 알려면 대부분의 등산로와 연결되는 17.3km의 산성을 한바퀴 돌아보는 곳도 좋겠다. 볼거리가 많은 범어사나, 접근하기 좋아 항상 사람이 붐비는 금강공원에서 주능선까지 오르는 코스는 대부분 40분에서 1시간의 거리 여서 평일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쪽은 산길이 짧고 주변에 주거지가 많아 사람들로 붐비는 반면 낙동강을 끼고 있는 화명이나 금곡, 호포 쪽에서 오르는 서쪽의 등산로는 비교적 길고 잘 다듬어지지 않아 한적한 편이다.
그러나 최근 이 한적함과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찾는 산꾼들의 발길이 많아지는 추세다. 도시철도 3호선 개통으로 접근이 쉬워진 만덕동 쪽에서도 상계봉의 시원스러운 조망을 찾아 오르는 등산객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다 금정산하면 백양 산도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 저작권은 부산산악포럼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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